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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은 어땠어?TIL (Today I Learned)/생각 2021. 1. 15. 11:39
1. 세계여행은 어땠어?
- 좋았어!

인생 최고,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 글라스토. 세계여행 어땠어라는 질문에 "좋았어!"라는 한마디로 답할 수 있을거 같다.
나에게 세계 여행은 소중한 추억이자 나의 20대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경험 중 하나이다. "20대 때는 범죄 빼고 다 해보자"라는 마인드를 항상 품고있었던 것 같다. 또한, 여행을 하더라도 남들 다 하는 식상한 여행이 아닌, 나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덕분에 "세계 뮤직 페스티벌 투어"라는 나만의 컨셉을 만들 수도 있었다. 즉, 좋게 말해서는 "새로운 도전"을 좋아했고, 살짝 비꼬자면 "관종끼"가 가득했던 나의 20대 모습이다.
흔히들 여행을 통해서 "자기 자신, 행복, 삶 등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혹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등으로 의미부여를 하고 에세이 등을 출판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같이 동행했던 친구들 중에 여행 에세이를 출판하거나 인플루언서가 된 친구들도 많다. 물론, 그 친구들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나 역시도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느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다만, 나는 무엇인가를 이룰려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여행을 했던 것도 아니고, 큰 의미부여를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야 내 추억들이 더 행복하게 회상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좋아서 했고, 좋았다.
2. 갑자기 왜?
- 교수님, 감사합니다.

셰계여행은 나의 희망봉. 남아공 희망봉에서. 지금이야 누구나 세계여행을 하는 세상이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세계여행이라 하면 언론에 보도되고, 책 한권 정도는 펼찬해야하는 그런 희소성있는 이벤트였다. 그렇기에 세계여행에 대한 동경과 로망이 지금시대보다 훨씬 컸던 것 같다.
또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Glastonbury"나 "Tomorrowland" 등 해외 대형 페스티벌에 가는 것을 버킷리스트처럼 꿈꾸지 않는가. 당시 나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모든 뮤직 페스티벌에 다 참석할 정도록 페스티벌에 미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전공 과목이었던 "국제경영학" 강의에서 해외 경험이 많으신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에 내 마음이 요동쳤다. (경희대 경영대학 김신 교수님 보고계십니꽈!!!)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세계 일주 한번 해보세요.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각색)
당시 강의실은 웃음으로 가득찼지만, 알 수 없는 설렘이 온몸을 휘감싸며 나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그리고 생각했다."그래, 나도 Glastonbury 갈 수 있겠네. 세계여행 한번 해볼 수 있겠네. 해보자."
3. 어떻게 갈래?
- F... 아니, 워킹 홀리데이

꽤나 방정 맞던 호주시절 가고 싶다고 누구나 갈 수 있다면, 버킷리스트로 뽑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돈과 시간. 누구나 그랬듯이 나 역시도 현실적인 벽에 막혀 좌절할 뻔 하였다. 학생으로서 세계여행, 그것도 뮤직 페스티벌을 다니는 자금을 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 한줄기의 빛이 보였다.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 당시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4,500원이었는데, 호주는 기본 19~23불! 거기에 호주 워홀러의 황금기라 불리던 호달러 환율이 1,250원인 시절! (현재 850원) 추가근무 하면 1.5배! 나이트 근무까지 포함하면 최대 2배까지!
"철이 없었죠~ 돈이 좋아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는게~" 단순히 돈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를 간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드는 20대 초반이었으니깐. 겁이 없었던 걸까. 어렸던 걸까. 그냥 가면 어느 정도 벌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무작정 떠났던 것 같다.
무작정 와서 그런가, 나름 고생을 많이했던 것 같다. 잡을 구하기 위해 레쥬메를 100곳 넘는 곳에 뿌리거나, 음료와 손수 만든 음식을 만들어서 공장 인사담당자를 주기적으로 찾아가 얼굴 도장을 찍기도 하였다. 차를 구매해서 공장 워커들 출퇴근 픽업 서비스를 하기도 하였고, 모은 돈이 목표금액에 못미쳐 워홀 막바지 때는 쓰리잡을 뛰면서 좀비처럼 일하였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추가근무가 있는 날에는 2시간씩 자기도...) 주 6~7일 쓰리잡을 뛰었으니깐.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 중 물리적인 시간(?)을 최대 잔인하게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경험하기 힘든 3D 블루컬러 잡도 경험해보고, (호주는 블루컬러에 대한 처우가 좋다) 외국인 노동자로서 타지에서의 삶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도움도 많이 받고 추억도 쌓고, 악덕 컨트랙터를 단체로 소송해 신문에도 실리고, 여행도 하고, 정말 좋은 경험과 추억들로 가득하다.
생각해보니,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단순히 세계여행의 자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밑천이 되어줬다. 워홀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고, 휴학하지 않고 학업에 열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불안에 떨기도 했다. 그래도 이 나이 이 순간에만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4. 심장이 터지는 순간
- Festival is my life

글라스토에서 이종혁 휘날리며 이름만 들어도, 상상만해도 심장이 뛰는 그런 순간이 있는가. 나에게는 페스티벌 하나하나가 그런 순간들이다. 인터넷에서만 봐왔던 페스티벌에 딱 갔을 때는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설레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홀린듯이 6대륙을 횡단하며, 20여개의 페스티벌과 파티, 콘서트를 다녀왔다.
사실 나는 음악을 업으로 하거나 음악에 빠져있는 친구들 처럼 엄청난 매니아는 아니다.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음알못에 가깝다. 그냥 난 일반 대중보다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듣는 정도일까...? 하지만 페스티벌을 정말 사랑했다. 음악을 넘어서 페스티벌이라는 그 공간과 분위기, 모든 경험들을 사랑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아무리 비싼 음향장비나 모니터, VR, 홀로그램 등의 기술이 나타나 기술적인 무대를 재연할지언정 페스티벌은 재연하지 못할 것이다.
페스티벌 개최 공지부터 라인업을 기다리는 순간, 티켓팅, 당일 날 친구들과 현장에 가는 여행길, 라이브 뮤직이 주는 사운드와 시각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떼창과 소통 등 관객과 아티스트가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 그리고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하는 순간, 잔디에 누워서 쐬는 바람, 혹은 악천후로 쏟아지는 폭우와 진흙탕, 엄청난 추위 혹은 엄청난 더위와 습도, 맛있는 음식과 술, 불편하고 협소한 캠핑 및 숙박시설, 열악한 화장실, 다음날 연차를 못써서 피곤에 쩔어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까지. 체험하는 이 모든 것이 페스티벌이다.
먼 훗날 간단한 장비만으로 현장과 똑같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다른 이들과의 교감까지 전해지는 기술이 나타난다면, 방구석 페스티벌도 가능해질까?

세계 최고 일렉 페스티벌 투머로우랜드, 국뽕에 취해. 무튼, 20대의 나는 페스티벌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즐겼다. 비록 남들이 봤을 때는 생산적인 활동이 아닐지언정,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것을 진심을 즐겼고, 너무나 좋은 추억과 경험들로 남았다면, 이것만으로도 내 여행은 대성공이 아닐까?
5. 재산
- 6대륙 횡단 :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추억들

1월 1일 새해 일출을 히말라야에서. 배낭여행은 생각보다 매우매우 피곤한 일이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돈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무엇이 있는지, 어디를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 지역의 문화와 물가는 어떤지, 어디서 묵어야할지, 무엇을 먹어야할지, 어떻게하면 시간과 금액을 절약할 수 있을지 등 매일이 정보를 찾고, 계획을 짜며,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의 연속이다.
또한, 각 지역마다 가지는 문화 및 특징들이 있기에 매번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을 해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생상태나 치안이 극도로 안 좋은 나라도 있고, 반대로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나라도 있다. 교통 인프라가 전혀 안 갖춰져있거나 영어로 소통이 아예 불가능한 지역도 많다. 여행자로서 지켜야할 매너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의 문화를 존중해주기도 해야한다.
때로는 밖에서 노숙을 하기도하고, 며칠동안 씻지도 못하거나 숫도물도 제대로 안나오는 열악한 숙소에서 자기도 한다. 수십시간씩 버스나 기차를 타기도 하며, 빵조각만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굶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방을 도난 당할까 잠을 못자거나 화장실을 못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20키로짜리 가방을 매고 수키로를 걷기도 해야하며, 온갖 상인들과 흥정을 해야하기도 한다. 밤 늦게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곳에 도착하기도 하며, 사건에 휘말리면 언어가 안 통하는 나라의 경찰서를 가기도 해야한다. 혹은 부패한 경찰이나 사기꾼에게 잡혀 강탈을 당하기도 한다. 정말 쌩 고생이다.

여행의 시작, 마추픽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우리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와 행복을 준다. 마추픽추, 피라미드, 타지마할 등 책이나 인터넷에서만 봐왔던 끝내주는 장소와 문화유적지, 그림같은 자연풍경, 다양한 엑티비티,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과 술, 음악과 공연, 파티 등 문화와 볼거리, 쇼핑 등 정말 다양하다. 이 많은 것 중에서도 제일 가치 있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것이다.
- 인복 : 혼자가 아니여서 할 수 있었다.

다이버들의 성지, 이집트 다합에서. 나홀로 떠난 배낭여행이었지만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덕분에 혼자서는 못하거나 힘들었을 것들이 가능해졌다.
언어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범죄의 타겟은 물론이며, 하다못해 잠깐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짐을 지켜줄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집단 지성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서로 함께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고 계획하고, 더 탄탄한 여행이 가능해진다. 숙소를 같이 쓰면서 숙박비를 아낄 수도 있으며, 2인분 음식을 시켜서 쉐어해서 먹을 수도 있다. 나중에는 결국 쉐어하우스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함께면 외롭지 않고 재미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된다. 각자의 사연을 들고 떠나온 배낭여행객부터 현지인 및 현지에 정착한 한인들까지. 이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정말 문화, 삶, 생각의 다양성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메뉴얼처럼 짜여진 일상과 교육, 그리고 매번 같은 활동반경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만남. 여행을 통해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재미있다. 이제는 버스 옆자리에 앉아있는 낯선사람에게도 손쉽게 말걸고 친해질 수 있는 스택 하나가 생겼다.
생각해보니 학창시절부터 군대, 학부생활, 워킹홀리데이, 세계여행, 취준 및 직장생활까지. 어느 것 하나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 없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어줬고, 그 사람들 덕분에 할 수 있고 이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인복이 넘쳐남에 감사함을 느낀다.
여행뿐만 아니래 내 인생 전체에서 곁에 있던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더 많이 보답하고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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